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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이탈리아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공동최대 등재등록 국가입니다. 특히 문과계열의 유학생들에게는 이러한 역사적인 유물의 탐방학습의 기회를 통해 생생한 학습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유학 시 이러한 계획을 동시에 세우셔서 탐방학습의 효과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스페인 마드리드에 직항 노선은 상시로 취항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이유로 통상 유럽 항공회사 혹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하여, 유럽의 주요도시를 경유하여, 그곳에서 스페인 행 비행기에 환승하시면 됩니다. 항공사와 항공권의 특징을 잘 파악하여 유학생에게 알맞은 항공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경우 주로 이용되는 항공편은 대한항공(KAL), 아시아나 항공(Asiana), 프랑스 항공(Air France), 이탈리아 항공(ALitalia), 영국 항공(British Air Ways), 네덜란드 항공(KLM), 독일 항공(Luft Hanza) 등입니다.
 
 
마드리드를 포함한 카스티야 레온(스페인 중부지방)은 메세타스(Mesetas)라고 부르는 고원에 위치합니다.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의 기온차가 격심한 내륙성 기후이며, 강우량이 적어 건조한 것도 특징입니다. 일반적으로 여행에 적당한 시즌은 봄과 가을 특히 7, 8월은 거의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여행에는 적합니다. 더위가 심하기는 하지만, 낮은 습도 때문에 그늘에 들어서면 더위를 견딜 수가 있습니다. 복장은 주간에는 30°C를 웃돌 정도이지만 아침저녁은 서늘하기 때문에 모자나 가디건을 가지고 휴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겨울은 추위가 심하여 특히 북부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에는 눈이 내릴 때도 있어 방한대책에 대비도 필요합니다.
 
 
스페인의 수도로 스페인의 정치, 문화, 산업의 중심지이며, 도로 및 철도, 항공의 요충지입니다. 유럽의 수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바라하스 공항은 3개의 터미널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마드리드시내로 운행하는 공공교통수단은 지하철, 공항버스, 택시 등이 있습니다. 톨레도, 세고비야, 알칼라 데 에나레스 등과 같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들이 근처에 위치해 많은 세계 관광객들이 모이는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마드리드 시내에 위치한 스페인 광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동상이 있어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지로 유명하며, 솔 광장은 대표적인 백화점인 코르테 잉글레스와 사라, 망고 등과 같은 유명한 상점들이 모여 있어 젊은 관광객들이 주로 방문하는 지역입니다. 레티로 공원은 관광객은 물론 현지 스페인 사람들이 휴식 공간으로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다양한 조각상과 정돈된 꽃과 나무, 작은 조각배를 탈 수 있는 대형 호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프라도박물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마요르 광장 등 이 있습니다.
 
 
먹 거리
보카디요는 바게트 빵으로 만든 일종의 샌드위치로 약 3유로부터 크기 및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며, 일반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하몬 박물관은 일종의 바 겸 레스토랑으로 하몬(돼지 넓적다리를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햄 종류)과 다양한 술안주 등을 맛볼 수 있습니다.

교통
역사가 마치 아름다운 열대 정원처럼 꾸며진 아토차역은 고속철도인 아베가 운영되어 세비야, 말라가 등과 같은 지역을 단시간 내 이동할 수 있으며, 차마르틴역의 경우 스페인의 기존 전통 건물과는 달리 열차(Renfe)를 통해 스페인 전역을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
터미널 T2 지하철에 있는 공항역에서 지하철 8호선에 오르면 12분 만에 누에보스 미니스테리오스(Nuevos Ministerios)역까지 갈 수 있고 요금은 1,15 유로입니다. 마드리드에서 장기간 체류하려면 지하철, 버스용으로 10회, 승차용 회수권 5.35 유로 메트로 패스(Metro Pass)를 사두면 편리합니다.

공항버스
시내중심부에 있는 콜론(Colon) 광장과 공항 간을 셔틀버스가 왕복 운행하고 있고 아침 4:45부터 심야 1:30까지 운행합니다. 낮에는 10분 간격으로 편수도 많습니다. 요금은 2,50 유로입니다. 버스는 콜론 광장 지하에 있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흑색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오면 세라노 도로 방향으로(콜론 광장에 새운 콜럼버스 탑과는 반대방향) 걸어서 횡단보도를 건너면(정면은 Loewe 상점가) 지하철 세라노 역의 입구가 있고 아직도 공항버스는 지하철 아베니다 데 아메리카 역 가까운 버스 터미널이 있습니다. 정거장에도 정차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지하철로 환승이 가능합니다.

택시
불법 택시를 피하기 위하여서도 꼭 터미널 앞에 있는 택시 승강장을 이용하시도록 하십시오. 시내까지 소요 20~30분정도 걸립니다. 미터 요금으로 15~20 유로 정도이며, 여기에 공항이용료 4,20 유로가 가산 적용됩니다.
 
 

이 도시의 기원은 기원전 1세기 이베로인의 촌락이었던 곳에 로마가 식민지로 만들었고 8세기에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정복되어 도시 명을 아랍 식으로 알칼라 나발로 개칭하였습니다. 알카라는 성벽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현재의 도시명칭은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알카라가 크게 번영한 것은 1499년에 대학이 창설됨으로서 시작하였습니다. 16세기에는 40개의 학원을 포용하는 대학도시가 되었습니다.

구시가지의 중심부에는 세르반테스 광장에는 문호의 동상이 서있으며 이 광장의 동쪽에는 알카라를 상징할 수 있는 꼴레히오 마요르 데 산 일데폰소(Cologio Mayor de San Ildefonso)가 서있습니다. 남측의 아랍풍 양식의 무디발 종루가 서있는 오이도르 성당(Capilla del Oidor)에는 세르반테스가 세례를 받은 세례반이 남아있습니다. 세르반테스 광장에서 마히스트랄(Magistral) 대성당에로 뻗어있는 메인스트리트는 스페인에서도 가장 중세적인 분위기를 남긴 도로이며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서도 유명합니다. 쭉 뻗어있는 석조 주랑은 15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세르반테스 관저(Museo Casa de Cervantes)와 Hospital de Antezana는 길 중앙지점에 있으며, Iglesia Magistral-Catedral에서 약간 북쪽 광장에 면하고 있는 13세기 건축이 시작된 대사교관(Palacio Arzobispal)과 수도원 (Convento de San Bernardo)이 서있습니다.

Colegio Mayor de Ildefonso는 톨레도 대사교입니다. 시스네로스 추기경에 의하여 1499년 창설되었으며 세계에서도 유수의 역사를 가진 대학입니다. 파사 또는 1553년에 건축된 쁘라떼레스코 양식의 걸작으로, 들어가는 우측의 1510년에 건립된 San Ildefonso성당은 무디발 양식과 쁘라떼레스코 양식의 절충으로 학원의 가장 오래된 부분입니다. 녹음이 우거진 철학자의 빠띠오의 내부에 있는 대강당은 옛날 학생들이 라틴어 박사논문에 도전하던 장소입니다. 지금에 와서도 입학식에 사용되어지는 한편, 세르반테스의 운명일인 4월 23일에는 스페인어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이 국왕으로부터 수여됩니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은 T1, T2, T3로 구분되어 있으며 T1은 국제선 T2는 국내선 T3은 마드리드-바르셀로나 셔틀 전용 공항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국제선 도착은 T1의 1층이 도착 로비로 되어있습니다.

전철
전철 이용을 하시기 위해서는, T1의 1층 도착 로비를 통하여 전철 탑승구를 이용합니다. 메트로 8호선에 탑승, 요금은 1,15유로, 마르 데 크리스탈(Mar de Cristal) 역까지 와서 메트로 4호선으로 환승 고야(Goya) 역까지 와서 다시 메트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아토차 (Atocha) 역에 도착합니다. 여기에서 교외선 C1, C2, C7을 이용합니다. 알칼라 데 에나레스 역까지 소요시간이 35분 걸립니다. 역에서 기차가 진행하는 방향에서 우측 편으로 나와 남쪽으로 500m정도 걸리며, 여기에서 10~15분이면 걸어가면 알칼라 대학부설 어학연수원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공항버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서 콜론 광장(Plaza de Colon)까지 공항셔틀버스를 이용하면 요금은 2.50유로이며, 버스는 콜론 광장 지하종점까지 운행합니다. 버스에서 하차하면 흑색 안내 선을 따라 계단에 올라서면 지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여기서 세라노(Serrano)거리 방향으로 걸어 횡단보도를 건너면 메트로 4호선 세라노 역 입구가 있습니다. 여기서 고야(Goya)역까지 와서 메트로 2호선으로 환승합니다. 솔(Sol) 역까지 와서 다시 메트로 1호선으로 환승하여, 아토차(Atocha) 역까지 와서 하차합니다. 교외선으로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ranes) 행 C1, C2, C7을 이용합니다. 35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구 레온(Leon) 왕국의 수도입니다. 레온 왕국은 이후 카스티야(Castilla) 왕국과 합병되어 통합 스페인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중세에는 산티아고 순례도의 요지였고 현재는 지방 상공업의 중심지입니다. 또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 이시드로 교회와 고딕 양식의 성당 르네상스식 산 마르코스 수도원은 3대 기념물의 상징적 중요 관광지입니다.

인구 : 147,000
접근 : 마드리드에서 기차로 4시간~4시간 30분, 평일 5~8편. 마드리드 남부터미널에서 버스로 3시간 30분~4시간, 8~13편.
특색 : 고산지대 표고 823

 
 

살라망카는 학생의 도시입니다. 13세기에는 프랑스 파리에 이어 유럽 3번째, 그리고 스페인의 가장 오래된 살라망카 대학이 창설된 이래 학문 문화의 중심으로 영광을 누렸습니다. 유서 깊은 건축물이 다수 남아있고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유학생이 모인 도시로 활기찹니다. 주말이 되면 아침부터 밤늦도록 학생들의 노래 소리가 그치질 않습니다.

인구 : 158,000 명
접근 : 마드리에서 기차로 약 2시간 30분, 평일 6편, 마드리드 아우토 레스(Auto Res) 터미널에서 버스로 약 2시간 30분 소요됩니다.

조개모양 기사의 집 (Casa de Conchas)
15세기 말에 건축된 고딕양식의 건물로 산티아고 순례자를 수호하는 기사의 집입니다. 외벽에는 산티아고(사도 야곱)를 상징하는 조개 모양으로 장식된 유래로 “조개의 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살라망카 대학 (Universidad de Salamanca)
리브레로스(Libreros) 도로 옆에 있는 대학정면 현관은 프라데레스코 양식 걸작 3단으로 분리된, 조각의 하단은 가톨릭 두 왕의 초상, 중단은 카를로스 5세; 가톨릭 두 왕으로 국가 상징문양, 상단은 로마법왕과 승려들의 초상으로 둘러싸여 비너스와 헤라크로스 상으로 조각. 정면현관 앞에 광장, 바디오 데 라스 에스꾸엘라스에 세운 조각상은 프리; 루이스 데 레옹(1527~91) 스페인의 최고 학자로서 그가 교편을 잡고 있던 교실이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신구성당 (Catedral Nueva / Catedral Vieja)
구 성당은 12세기 건조된 로마네스크 양식입니다. 신 성당의 정면 현관을 들어서면 우측 출입구가 있고 이태리 화가 니콜라스 프란티노는 16세기 초부터 18세기에 걸쳐 건조된 고딕양식 특히 프라테스코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정면 조각은 가치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성당 남측 거리 탑(Torre de Calle)은 스페인에서 가장 조화로운 아름다운 탑입니다.

수도원 (Convento de San Esteban)
1525년 착공하였습니다. 1618년에 완성된 도미니크 수도회 수도원 콜럼버스는 항해 연구를 위하여 이 수도원에 체류하면서 살라망카 대학의 천문학부에 다녔습니다. 또한 이곳은 쥬리케라 건축양식의 발상지로도 유명. 쥬리케라 양식이란 17~18세기에 걸쳐 발달한 스페인 독자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그 이름은 아름다운 건축가를 다수 배출한 살라망카 출신의 쥬리케라 가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교회의 제단은 그 일가의 장남 호세의 대표작입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이 지역은 1년을 통하여 비가 적은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입니다. 여름 더위도 내륙 지방보다 낮고 겨울에 추위도 덜합니다. 이러한 혜택을 받은 기후 때문에 여름 피서지 겨울 피한지로서 1년 내내 분빕니다. 역시 여름이 성수기에 속합니다. 유럽 각처에서 바캉스 손님들이 몰려옵니다. 명승지는 대단한 혼잡을 야기시킵니다. 그 때문에 호텔 예약은 어렵고 관광지는 어디든지 사람으로 뒤 덥혀지기 때문에 혼잡을 피하고 싶으면 봄가을에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피레네 산속의 안도라에는 여름인데도 아침저녁은 춥기 때문에 방한장구가 필요합니다.

스페인에는 지방과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지방이 있습니다. 바르셀로나를 주도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도 또한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가 육성되어 왔습니다. 이슬람교도가 이베리아반도의 태반을 지배해온 9세기 카탈루냐는 프랑코 왕국의 판도에 편입되어 986년에는 바르셀로나 자치왕국으로 독립을 선언하였고, 이것이 현재의 카탈루냐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중세 유럽의 영향을 받으면서 또한 이슬람의 문화를 받아들인 카탈루냐는 세력을 지중해로 학대하여 약 4세기에 걸쳐 황금시대를 맞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스페인 통일에 의하여 쇠퇴하였고 1714년 스페인 계승전쟁의 패배를 기하여 자치권을 상실하였고 다시 발전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였습니다. 카탈루냐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대 모델리스모라는 혁신적인 예술운동이 일어나 가우디를 위시하여 건축가들의 작품이 도시에 들어서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

1977년에 염원의 자치권을 획득한 카탈루냐는 프랑코 시대에 금지당한 카탈루냐 지방어를 공용어로 부활시켰고 지금은 도시의 요소에 카탈루냐 표지판이 걸려 있고, 카탈루냐 지방어로 재미있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자태를 볼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자유롭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서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바르셀로나는 1992년 올림픽 개최를 기회로 스페인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로 약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구 : 250 만명
접근 :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에서 특급열차로 5시간, 1일 7~8편. 마드리드의 아베니다 데 아메리카 터미널에서 버스로 7~8시간 소요

바르셀로나 하늘의 현관은 시가지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12km 지점에 있는 바르셀로나 엘 프랏트 국제공항(Aeroport de Barcelona El prat) 공항에서 시내로는 국철, 공항버스, 택시 3가지 교통수단이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특징
유럽의 도시에는 대체적으로 광장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 바르셀로나에는 카탈루냐 광장(Plaza de Catalunya)이 이에 해당됩니다. 광장의 남쪽으로 협소한 도로로 이루어진 지역이 구시가지입니다. 신시가지는 아쟌브라 라고 부르는 넓은 지역입니다.

중세의 잔재가 남아있는 구시가지
구시가지에서 눈에 띄는 도로인 라스 람블라스(Las Ramblas)는 구시가지 동쪽에 있고 성당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바리 고틱(Barri Gotic)이라 부르는 지역. 교회와 박물관 미술관 등이 어울려 있고 로마시대에 기원을 둔 바르셀로나에서 최고 오래된 지역입니다. 중세의 풍경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동시에 최근에는 재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이 지구를 만들 당시 입안자 하우메(Jaume) 1세를 기념하여 세운 성 하우메 광장(Plaza de Sant Jaume)에는 자치정부 청사, 시청 등 행정기관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볼거리가 산재되어 있는 신시가지
19세기 이래 도시계획에 따라 확장되어온 지역으로 구시가지와 대조적으로 정비된 구획정리 되어있습니다. 카탈루냐 광장부터 북쪽으로 연장하면, Pg, de Gracia 도로는 신시가지에서 눈에 띄는 도로가 있습니다. 이 도로에는 가우디 작품의 20동 이상의 모델리스모의 상징적 건물이 있고 그 외 신시가지 동쪽에는 성가족교회성당(Sagrada Familia)과 공원 또 서쪽은 미술관 등 볼 거리가 많은 몬쥬익 언덕이 있습니다.

몬세라트 (Montserat)
지압절벽을 배경으로 건립된 대성당입니다. 바르셀로나로부터 북서쪽 53 Km 광활한 전원풍경 속에 거대한 회백색의 바위산이 솟아있습니다. 예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성지가 되어 카탈루냐 지방을 위시하여 스페인 전국으로부터 많은 순례자가 방문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중심이 되어버린 수도원
표고 1235m 산의 중허리에 지금도 80명의 수도사가 살면서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원이 있습니다. 관광객이 가장 눈 여겨 보는 것은 수도원 부속 Basilica 대성당입니다. 로페이 역으로부터 대성당으로 향하는 도중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점, 호텔 등이 이어져 있습니다. 이 대성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흑 마리아상(La Moreneta)입니다. 나폴레옹이 이곳으로 침략해 왔을 때 수도원이 파괴당하고 보물이 도난당하였지만 이 마리아상 하나만은 이 지방 사람의 손에 의하여 숨겨져 보관되었다고 합니다. 과거 한 때에는 카탈루냐 지방어가 몇 번 억압금지 되었어도 이곳만은 시종 카탈루냐 지방어로 제례의식을 흑 마리아상 앞에서 행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카탈루냐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른 염원에서 매 일요일에 수도원 앞 광장에서 춤추게 되는 민족무용 사루다나를 보면 카탈루냐 사람의 민족의식이 매우 강함을 느낍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은 에스콜라니아(Escolania)라고 하는 소년합창단입니다. 13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기 때문에 매일(7월 제외) 13:00 와 19:00부터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 외 대성당 앞에는 중앙아시아(중근동) 고고학유품과 금은세공 엘 그레코, 피카소, 달리, 미로 등의 회화가 전시되고 있는 몬세라트(Montserrat) 박물관이 있습니다.

케이블카로 전망대를 답사
등산열차 푸니쿨라르(Funicular)에 탑승 산 후안(San Juan)의 전망대까지 올라 보는 것도 좋습니다. 눈 아래 멋진 파노라마가 넓게 펼쳐지고 그 외 수도원 주변에는 몇 개의 전망대와 예배당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사나 노바(Sana Cova)는 흑 성모사가 발견되었다는 전설의 동굴로 도중에는 가우디 작품 “그리스도의 부활” 모델리스모의 조각가들에 의한 기념물이 건조되어 있습니다.

 
 

국철 (RENFE)
국철(Renfe)의 교외선 C-1번의 운행하고 있고 공항에서 다른 공항 역까지 이동하는데 터미널 A와 터미널 B의 사이에 있는 약 300m의 연락 유교를 건너야 합니다. 연락 교에는 동력보행도가 설치되어 있어 무거운 물건을 가졌어도 힘들지 않습니다. 열차는 06:13 공항 역에서 3번째 역 산츠 역(Estacion Sants) 소요시간 15분입니다. 하차하면 편리합니다. 산츠 역에는 지하철 3, 5호선 카탈루냐 역에서는 지하철 1,3 호선에 환승이 가능합니다. 북쪽 버스터미널에 가면 공항 역에서 5번째 아르크 데 트리옴프역(Arc de Triomf)에서 하차가 가능합니다.

공항버스 (Aerobus)
청색 차체의 공항버스는 공항과 카탈루냐 광장과의 사이를 순환하고 있습니다. 국철보다 차편이 많아 수화물을 옮기는 거리도 짧아 편리합니다. 각 터미널 앞에는 버스 승강장이 있고 06:00 ~24:00 (토, 일은 06:30~) 15분 간격으로 운행됩니다. 요금은 3.45유로입니다. 승차 시 운전수에게 요금을 지불합니다. 카탈루냐 광장까지 소요 20~30분이지만 도로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요주의 이 버스는 공항에서 시내 방향일 경우 카탈루냐 광장이 종점입니다. 시내에서 공항방향일 경우는 카탈루냐 광장이 시발점이 됩니다.

택시
무면허 택시를 피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터미널 앞에 있는 택시 승강을 이용해야 합니다. 시내까지 20~30분 정도입니다. 여기에 공항 이용료는 2.10 유가 첨가됩니다. 택시 짐칸에 넣는 수화물 1개당 0,85 유로 추가 요금을 가산하여 지불됩니다.

성당
13세기 중반부터 14세기에 걸쳐 건조된 고딕양식 건축의 걸작입니다. 특히 내부에 길게 줄지어 있는 100장 이상의 스탠드 글래스 (Stand-glass)는 하루 동안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색의 변화는 매우 특이합니다. 미술관에는 10세기부터 17세기의 회화 조작 등이 수집되어 있습니다.

산 이시도르 교회 (Basilica San Isidro)
현재의 건축물은 11세기 말에 착공 그 후 개축하였습니다. 고딕과 르네상스 등 각양각색의 양식이 섞여 있습니다. 부속미술관에는 로마네스크 미술의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알려진 반든 왕가의 영묘안치소입니다. 천정에는 프레스코 화가 특이라고 합니다. 견학소요시간은 가이드 안내로 약 1시간 소요됩니다.

보티네스 관저 (Casa de los Botines)
도시 중심에 있는 것으로 잊지 않고 찾아볼 만한 곳입니다. 건물 모서리 4개의 첨탑은 아무래도 가우디의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카탈루냐지방 이외에서 가우디의 작품이 나와 있다는 것은 매우 희귀한 작품입니다.

 
 

물의 축제로 유명한 스페인의 제 3의 도시
나무 색깔의 창과 외벽의 오렌지 색깔의 장식이 아름다운 기차역은 유럽적인 분위기를 표출하면서 스페인의 제3의 도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근대적 건물과 역사적인 건물입니다. 건물이 융합된 시가지에 어리둥절해 버립니다. 구시가지는 그랑-빅토리아 강에 둘러 싸여 좁은 길을 걸으면 교회와 상점 파티오가 붙은 고딕양식의 가옥을 들여다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 차례의 홍수 이후 매몰된 도우리아 강은 지금은 공원이 되었고 이곳을 넘어서면 항구와 해변입니다.

발렌시아는 지중해성 기후 때문에 온화하여 “오렌지 꽃의 해안” 이라고 불리는 이 주변은 해변 명승지로 사람들에게 친숙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인 것입니다. 공업과 더불어 농업도 왕성하고 오렌지는 물론 남쪽에 있는 아루베라 호수는 스페인 제일의 쌀의 고장으로 마치 한국처럼 논이 넓습니다. 이외에도 발렌시아에는 잊을 수 없는 축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3월 중순 불의 축제인데, 이때는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인구 : 약 740,000명
접근 : 마드리드 아토차 역에서 고속 열차로 3시간 30분, 1일 8~13편.

성당 (Catedral)
모스크 유적으로 13세기 중엽에 건설이 시작되어 14세기 말에 완성한 대성당입니다. 17~18세기에도 손질을 해왔기 때문에 고딕양식과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 양식 등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내부 미술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 되었다라고 여겨지는 성배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성당 남서모퉁이에 있는 8각형의 미겔레테 탑 (Torre de Miguelete), 높이 70m 탑 위에서 발렌시아 시가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라 론하 (La Lonja)
15세기 말 이슬람 왕국 유적에는 비단교역소로 건립된 고딕 양식의 건물로 투명하게 조각된 창과 높이 11m, 기둥도 아름답습니다.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현재는 전람회와 연주회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립도자기 박물관 (Museo Nacional de Ceramica)
발렌시아의 3대 도자기인 파테르나, 마니세스, 알고라는 원래 스페인 전국에서 모아온 도자기가 수집되어 있습니다. 13~15세기의 마니세스 가마에서 만들어진 진기한 작품도 있고 도자기에 흥미가 있는 사람은 필히 보아둘 만합니다.

미술관
수도원 건물을 개축하였습니다. 15세기에 활동한 발렌시아의 프리디프파에 의한 제단화, 엘 그레코, 발레스게스, 리베라, 고야 등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불의 축제 박물관 (Museo Fallero)
불의 축제 기간 중 발렌시아의 거리에는 대소 600여대의 긴 머리 장식의 인형을 꾸며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인형에게 투표를 하고 19일 심야 절정에 달하면 인형은 모두 태워버립니다. 콘테스트 결과 우승한 인형만은 태우지 않고, 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연대를 추적해 보면 사회의 변화를 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예술과 과학의 도시
발렌시아 도시는 21세기 새로운 과학 도시를 이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입니다. 유럽 최대급의 수족관, 과학박물관, IMAX 영사관, L'HEMISFERIC 등이 있습니다.

 
 

알리칸테 지방에서 무르시아 지방에 걸쳐 지중해연안은 백색해안(Costa Blanca)으로 불립니다. 바캉스를 보내는 데에는 최고의 휴양지입니다.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빛의 도시로 불러온 알리칸테는 코스타 블랑카의 중심지입니다. 온화한 기후와 넓은 해수욕장이 있고, 여름에는 해수욕객, 겨울에는 피한객의 도시로 불려옵니다. 매년 6월 하순 행해지는 산 후안 불의 축제는 유명합니다.

인구 : 약 26만명
접근 : 마드리드 아도차 역에서 약 4시간, 1일 7~8편.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서 약 4시간 30분~5시간, 1일 7~8편.

시청 (Ayuntamiento)
18세기 건축으로 고딕양식 특히 돌조각과 꼬여진 기둥으로 장식된 정면입구는 흡사 궁전같이 멋집니다. 내부 살롱과 타일로 장식된 로코코 식 예배당도 아름답습니다.

아세구라다 박물관 (Museo de la Asegurada)
18세기 궁전을 미술관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피카소, 미로, 달리, 다비에스 등 스페인 현대 미술의 샤갈, 라딘스키, 불락, 베곤 등 조각가 에우세비오 셍브레가 기증한 그랙숑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의 주변은 구시가지로 산타 크로스 가 라고 부르고 좁은 도로가 귀엽습니다.

산타 바르바라 성 (Castillo de Santa Barbara)
“산타 바르바라 성”은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성입니다. 그 옛날 칼다고 인이 축성했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알리칸테 시가지와 항구가 조망됩니다. 푸른 바다와 흰색 모래언덕의 대조가 아름답습니다. 해안가에는 파세오 데 고미스(Paseo de Gomiz)로 통하는 산 중앙을 오르게 하는 엘리베이터가 있고 단번에 정상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돌아올 때는 경치를 구경하며 걸어서 내려오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들이 스페인을 떠올리는 것은 투우 플라멩코, 하얀 벽색의 집, 정열의 여인, 이러한 상상이 현실적으로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 바로 안달루시아 지방입니다. 스페인의 최남단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이 옛날부터 아프리카와의 관계를 밀접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8세기 초부터 약 800년간 이어져온 아프리카 세력에 의하여 지배 받았고 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즉 그라나다에 있는 장엄한 궁전을 위시하여 안달루시아를 여행하는 것은, 유럽 대륙과는 다르게 아랍문화유산과 접촉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특수적 문화 환경 또는 1년 내내 맑은 하늘의 혜택을 받는 기후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풍경뿐일 것입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의 성격까지도 특징이 있습니다. 밝고 양성적인 기질이지만 생업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한가한 틈만 있으면 수다를 떨면서 현실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안달루시아 주 지방의 행정구역
우리나라의 시, 군 해당 구역, 알메리아, 카디스, 코르도바, 그라나다, 하엔, 말라가, 세비야

면적 : 8,700 K㎡
접근 : 안달루시아의 중심도시 세비야 까지는 마드리드에서 고속 열차로 약 2시간 30 분정도가 소요됩니다.

가장 좋은 시즌은 봄에서 가을에 걸쳐 특히 6월은 해바라기가 만개하여 스페인다운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단지 7,8월은 “안달루시아의 프라팬” 이라고 부르는 세비야에서 코르도바에 이르리까지는 최고기온이 40°C 초과할 때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온도가 내려간다 해도 매우 덥습니다. 무리하여 걸어 다니면 일사병에 걸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런 시기에는 원주민들은 한 낮에는 낮잠 (Siesta)을 자게 됩니다. 가급적 태양이 강하지 않은 오전중과 저녁에 활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중해 연안 태양의 해안 (Costa del Sol) 이름을 얻게 된 겨울에도 태양이 강렬하여 일 년 내내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입니다. 여름 바캉스 시즌은 물론 겨울에도 피한지로 분빕니다.

 
 

영화, 카르멘의 무대가 되었던 Andalucia 주의 수도
옛날에는 서 고트제국의 수도였던 세비야는 지브랄탈 해협을 건너온 모로코에 정복당한 것이 712년의 일입니다. 500년 이상 이슬람 문화 번영의 무대가 되어 과달키비르 강을 앞에 둔 좋은 항구로서 지리적 조건이 좋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매우 발전하여 코르도바 가리프 제국이 붕괴된 1070년에는 그 당시까지 반도의 수도였던 코르도바를 병합할 정도로 세력을 이어갔습니다. 히랄다(Giralda) 탑과 황금의 탑등 현재에도 남아있는 이슬람 건축물은 이 세대에 건조된 것입니다.

레콩키스타가 압도적으로 세력을 확대한 13세기 중엽 세비야에서 이슬람 세력이 소탕되어 버렸고 반대로 그리스도 교도에 의하여 세비야는 새로운 약진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곳이 인도가 아니고, 신세계로 밝혀내어 장명한 아메리고 베스푸치 (Amerigo Vespucci)는 세비야 항구에서 범선을 출발시킨 것을 시발점으로 신세계와의 교역 독점권을 확보하였습니다. 유럽 최강국의 지위를 확립한 카스티야 왕국의 번영을 뒷받침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세비야 시가지는 역동적인 역사를 가짐과 동시에 화려함을 가진 스페인의 4번째 도시로서 품격도 갖추고 있습니다.

인구 : 71만명
접근 : 마드리드 아도챠 역에서 고속 열차로 2시간 30분, 1시간 간격 운행됩니다.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서 8~12시간 요소.
마드리드 남부 버스터미널에서 약 6시간 소요, 1일 7~8편 운행됩니다.

대성당과 히랄다 탑 (Catedral & Giralda)
교회지도자회의의 결정에 따라 1401년 모스크 사원 유적에 건설을 시작합니다. 약 1세 후 1519년에 완성시킨 스페인 최대 또한 유럽의 성당으로서는 로마의 성 베드로사원, 런던의 세인트 풀 사원 다음으로 규모를 과시합니다. 길이 116m 폭 76m. 그 폭의 넓이가 특이한 형태의 모스크사원의 유명한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부에는 성령의 강림을 표현한 스텐드 글래스, 알폰소 5세의 묘가 있는 왕실 예배당(Capilla Real) 15세기의 성가 대석의 성서 장면이 조각된 황금색의 목재제단 등 볼만한 것이 가득합니다. 회랑 우측에 있는 콜럼버스 묘(Sepulcro de colon)는 당시 스페인을 구성한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 4명의 국왕의 관을 모셔두고 있습니다. 또한 무리요, 고야, 술바란의 그림도 있고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고 성당내의 생생한 공기를 충분히 맛본 뒤 면죄의 문에서 조망해 보는 것도 멋집니다.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자태를 들어내 보이는 히랄다(Giralda) 탑은 세비야의 상징입니다. 탑 높이는 97,5m. 12세기 말 이슬람 교도 알모아도 족의 손으로 건립되었습니다. 프라데레스코 양식의 종루는 지진으로 파괴된 부분을 16세기 복원 보충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아주 작게 보이는 청 탑은 높이 4m 중량 1288kg로 바람을 받으면 이 구리상이 회전을 한다고 하니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람을 본다는 의미인 Giralda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높이 70m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멀리 펼쳐져있는 도시를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알카사르 (Alcazar)
이슬람 시대의 성곽을 레콩키스타 후 그리스도교도의 왕들이 개축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1350년에 즉위한 베드로 1세는 스페인 각지에서 이슬람 기술자를 불러 모아 그라나다의 아람브라 궁전을 방불케 하는 궁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칠기세공을 구사한 후궁 patio 히말라야 송 나무로 원형천정으로 주민 외국대사의 집무실은 무띠할 양식의 걸작품입니다. 이슬람 문화에 심취한 베드로 1세는 이슬람 복장을 본받아 궁전 내에서는 아랍어를 사용토록 명령했다고 합니다. 알칼사르 내에서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이국 산 진기할만한 초목이 심어져 있습니다.

산타 쿠르스 (Barrio de Santa Cruz)
알칼사르(Alcazar)의 북측의 넓은 지역에 유다야인거리가 세워져 있습니다. 미로 같이 얽힌 좁은 길에는 삶과 죽음에 관련된 이름들이 붙어있고, 낡은 등불이 걸려있는 하얀 벽을 한 가옥의 발코니에는 화려한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호화로운 철책을 통하여 분수와 분제식물로 꾸며진 중앙정원을 바라볼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이 지구에는 화가 집단이 살고 있습니다.

이탈리카 (Italica)
이탈리카는 로마시대의 유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세비야에서 9km 북서쪽, 이탈리카는 “도라야누스” 황제와 하도리아누스 황제가 태어난 고대 로마시대의 도시입니다. 기원전 206년에는 로마의 식민지로서 영화를 누렸습니다. 주위 둘래가 3,150m, 5개의 대도로가 평행으로 뻗어있고 하수도 설비도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현재는 신전, 욕탕, 2개의 극장유적이 남아있고, 중요한 조각 등은 세비야의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이탈리카에도 보존관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원형극장에서 콘서트 등도 개최되고 있습니다.

 
 

이슬람 문화의 영화를 지금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이리베리스 라고 불리었던 영화를 누렸었습니다.
8세기부터 시작된 모로코인의 유입 이후와 1492년의 레콩키스타(=수복운동)의 완료시점까지 이슬람교도에 의하여 이베리아반도 지배의 거점으로서 장기 번영을 과시한 고도였습니다. 특히 코르도바 왕국의 분열로 쇠망한 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철수한 이슬람 최후의 왕조로서 레콩키스타의 폭풍에 사라지면서 종말의 향연에 지나지 않는 알람브라 궁전을 세웠고 성을 함락당하고 이 성의 마지막 왕인 압딜은 시에라 네바다 사막의 험로의 도달하여 언덕위에 올라 궁전이 보이는 곳에서 석별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1492년은 레콩키스타 완료의 해인 동시에 그라나다 정복자 이사벨 여왕의 원조를 받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해로서 스페인이 세계제패의 꿈을 태우면서 대양으로 진출하여 대양항해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모스크사원을 접수하여 그리스도 예배당이 되었고, 아랍양식은 파괴되지 않고 그리스도교 문화에 접목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이슬람지배는 장구한 역사를 만들었고 지금도 도시 이 곳 저 곳에 아랍 향연의 여운이 생생하게 숨 쉬고 있습니다.

인구 : 26만명
접근 : 마드리드 아도챠 역에서 기차로 6시간, 1일 2편. 마드리드 남부 버스터미널에서 4시간 50분, 1일 9~15편.

알람브라 궁전 (Palacio de la Alhambra)
그라나다 왕국이 건국된 것은 1238년입니다. 이슬람교도의 본가지였던 코르도바와 세비야가 함락되고 레콩키스타 완료에 이어 풍운이 급속히 몰려있는 시대였습니다. 나술 왕조 초대, 왕 알 압말(재위 1232~1273)은 허약한 국가의 기반을 정비하기 위하여 원수인 카스티야 왕국의 속국으로 외교적으로 안정을 시켜 상공업 발전에 역량을 기울어 경제력을 키우고 왕은 알람브라 성 내에 왕궁을 축성하고 스페인-이슬람 문명의 빛나는 기념비인 알람브라 궁전인 것입니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궁전은 초대 왕이 죽은 후에도 역대 왕에 의하여 건설이 진행되었습니다. 7대왕 유섭 1세(재위 1333~1354) 때에 완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알람브라 성내에는 모로코인 귀족을 중심으로 2,000명 이상이 살았습니다. 시장, 모스크사원, 주택가가 정비되어있고 귀족의 궁권은 7개에 달하여 그 중에도 나술 왕 궁전은 외견상으로 특징이 없어 보이나 일단 한 발짝 안으로 들어서면 환상적인 세계가 전개되어 이슬람 예술의 결정판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워 왕이 마법을 사용하여 궁전을 완성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환상 세계의 종말은 1492년에 도래하였고 레공키스타의 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한 최후의 왕 “밥딜” (제위 1482~1492)은 가톨릭 여왕 이사벨에게 성을 완전히 양도하고 신화들과 함께 북 아프리카로 도망하였습니다. 18세기 왕위계승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을 경과하면서 알람브라 궁전은 황폐해 버렸지만 19세기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의 “알람브라의 이야기”라는 저서에 의하여 다시 세계의 주목을 모았습니다. 환상세계를 재건은 물론 현재는 치밀한 수복이 진행 중입니다.

나사리에스 왕조 궁전 (Palacios Nazaries)
방문자를 천일야화의 세계로 유인한 환상적인 나사리에스(Nazaries)왕조의 궁정, 왕궁의 서쪽 끝 Sala del Mexuar에는 외부의 강렬한 태양아래를 걷고 난 후 작은 문에 들어서면 눈에 익을 때 까지 Mexuar 궁전 안에서는 희미한 방인 것처럼 느낌을 받습니다. 이곳이 재판소이고 궁전 내 최고 오래된 부분입니다. 뒤편은 알바이신 언덕을 바라다 보이는 기도실입니다. 이어서 Mexuar의 중앙정원 북측에는 알바이신을 바라보는 황금의 공간이 있고, 왕궁 방문객이 사용했습니다. 남측에는 고마레스 궁으로 가는 입구가 있고 대사의 방(Salon de Embaiadores), 중앙정원, 사자들의 정원, 제왕의 공간, 자매들의 공간 등등 이 알람브라 궁전에는 수많은 방이 거미줄처럼 엉켜 가히 환상세계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군사요새 (Alcazaba)
“유일한 알라신은 승리자로다”라고 새겨진 포도주의 문을 경계로 알람브라 성내는 나사리에스(Nazaries) 왕조의 궁전을 중심으로 주택가와 군사 요새인 알카사바(Alcazaba)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알카사바(Alcazaba)는 로마시대 성벽 유적에 모로코 인들이 880년경부터 요새를 축성한 것입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춘 것은 그라나다 왕국건국 이후 그리스도교국가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하여 아랍세계의 군사기술을 집결시킨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고 공격해오는 적이 입구 성문을 파괴하려고 하면 가연성 기름을 흘려 격퇴하고 이를 넘어서 침략해 오더라도 중앙정원까지 긴 통로는 협소하여 사살하기 쉽게 되어있어 병력손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시도하더라도 함락이 불가능한 뿐이었습니다. 현재는 유럽연합의 깃발이 휘날리는 베라탑(Torre de la Vera)에서의 조망은 압권입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Palacio de Carlos V)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5세는 1526년 신혼여행에서 알람브라 궁전에서 숙박했을 때 건설을 결심했던 궁전으로 카를로스 5세는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에 대성당을 증축했던 건축 애호가로서 그라나다를 미래의 스페인 제국의 수도로 하기 위한 웅장한 신 궁전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건축 양식을 당시 최신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하고 자금은 그라나다의 모로코 사람으로부터 징수토록 하여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그 후 모로코인 추방령이 발령되면서 자금난으로 건설은 중단되었습니다. 공사가 다시 시작된 것은 18세기가 되어서 이루어 졌습니다. 현재 1단계는 두 자매의 거실(Sala de las Dos Hermanas) 출입문을 필두로 궁전 관련 품을 전시하는 알람브라 박물관(Museo de la Alhambra). 그 단계는 미술과(Museo de Bellas Artes) 으로 되어있습니다.

헤네랄리페 (Generalife)
알람브라성 밖에는 “태양의 언덕”이 있습니다. 13세기 건설된 나사리에스 왕조의 별궁이 있습니다. 별궁 안 파티오는 스페인-이슬람 정원의 대표작으로 좁고 긴 연못 주위에 많은 꽃들이 어지럽게 피어있고, 분수대 물은 실제로 시원합니다. 몇 개의 정원으로 꾸며진 “태양의 언덕” 이지만 어느 하나 남아있는 모두가 가장 아름다운 헤네랄리페(Generalife)까지의 정원은 1951년에 완성된 새로운 정원입니다.

알바이신 (Albayzin)
아랍의 통치하에 요새화된 성곽도시로 발전해온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지가 남아있는 지구입니다. 지금도 이 언덕 외관을 손상시킬 정도의 건축은 차단시키고 있어 원형 보존을 하고 있습니다. 알바이신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이 일대에 바에사를 추방당한 아랍사람이 살았다는 연유입니다. 이곳 주민은 옛날부터 기품이 높고 레콩키스타에 의하여 그라나다가 함락될 시점에는 아랍인의 저항에 막혀 가옥의 흰 벽과 석축은 유혈로 물들었었습니다. 알바이신은 원래는 성곽 요새도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길은 미로같이 얽혀 있어 방향감각을 상실해 버립니다. 산살바도르 교회를 향하여 보면 알바이신으로 최근에도 많은 방문객이 많은 곳인 산 니콜라스 전망대가 있습니다. 시에라 네바다를 배경으로 알람브라 궁전조망은 세계 제일의 볼거리입니다. 파티오에 피어있는 꽃들과 아랍 양식으로 장식된 창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면 카르멘으로 부르는 분수가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갖춘 가옥들이 줄지어 늘어져있습니다. 성벽 가까이에 있는 라르가 광장은 알바이신의 중심입니다. 16세기에는 시장으로 번창했던 장소였습니다. 주변은 지금도 이 언덕에는 주민들의 상점가로서 활기가 충만합니다.

언덕의 서남쪽 로나(Lona) 전망대에서는 성당을 중심으로 한 시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라 크리스토발(Sara Cristobal) 전망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비옥한 들판은 멀리 “하엔”쪽까지 광활합니다. 일몰이 되면 해질 녘에 태양이 붉게 불타 안달루시아 지평선에 녹아내리는 장대한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라나다의 눈 (El Ojo de Granada)
그라나다 시가지를 집중적으로 파악하는 데에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새로운 시설입니다. 알바이신의 낡은 건물을 이용하고 있지만, 내부에는 최신시설비가 갖추어져 있고 시각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방은 그라나다 시가지와 주변지역에 관련된 비디오를 약 15분 감상할 수 있고 두 번째 방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사용했다고 하는 가마라 오스그라로 시내 관찰이 됩니다. 거울을 사용으로 외부의 풍경을 실내의 원판 형 스크린에 투사된 것을 각도를 조작해가면서 담당자가 설명해줍니다.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과 자동차가 실시간으로 영사되어 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챠피스 경사면 (Cuesta del Chpiz)
알바이신으로 통하는 챠피스 경사면(Cuesta del Chpiz)의 동측-대가 사크로몬테(Sacromonte)의 언덕입니다. 모마 족들은 이 언덕 경사면에 굴을 뚫어 살았고 이 동굴 주거는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합니다. 사크로몬테의 안내 센터 내에는 민족 박물관(Museo Etnografico) 이 있고 12개의 “케바”를 둘려보면서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추적해 가면서 실제생활 형태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전통공예의 금속공예와 직물, 칠기제품의 공방은 특히 흥미가 깊습니다. 이 언덕 정상에 건립한 산미겔 알토(Iglesia de San Miguel Alto)에서는 알람브라 궁전 알바이신 언덕 대성당 그라나다 시가지 전경과 이 모든 것을 총망라하여도 시계 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왕실예배당 (Capilla Real)
그라나다를 그리스도교도 손아귀에 들어옴으로서 레콩키스타에 종지부를 찍은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를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녀는 이 땅에 묘소마련을 결정 1504년에 엔리케 에가스의 설계로 건립에 착수하였고 동년 여왕은 사망하여 남편 페르난도 2세도 1516년에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1521년 건물낙성과 더불어 두 왕의 유해는 이곳에 안치되었습니다. 건물은 현재 성당의 일부로 되어있지만 성당 보다는 오랜 역사적, 미술적 가치도 큽니다. 예배당은 고딕 양식을 내포한 도루다노 양식으로 가톨릭 그 왕 시대의 16세기를 현재에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리석에 조각된 왕의 묘가 보이도록 우측에는 두 왕 이사벨과 페르난도 좌측에는 딸 화나와 남편 펠리페가 잠들어 있습니다.

대성당 (Catedral)
그라나다 함락 후 모스크 사원유적으로 1518년 건설이 시작되어 당초는 도래도 대성당의 고딕양식을 본받아 기초공사가 진행되었지만 1528년 이후는 디에고 데 시로에가 공사담당을 하여 프라데레스코 양식의 최대건물이 되었습니다. 이 양식은 이태리 르네상스에 융화 발전해 가면서 구조적으로는 고딕 양식으로 장식 면으로는 아랍적인 무디할 양식을 사용하게 된 절충된 것이 됐습니다. 그 후 르네상스 풍으로 의장통일로 진행, 가톨릭 승록서품을 받은 그라나다 출신 비극의 화가 아론소 가노가 공사에 화가로 참가하여 그가 정면입구와 성당 내 장식을 담당하여 1704년까지 공사를 이어갔습니다. 탑의 부분은 아직까지 미완성이고 성당 내는 스텐드 글래스의 빛이 찬란하고 특히 시로에의 손에 이루어진 황금의 예배당은 볼 가치가 있다 할 것입니다.

산 후안 박물관 (Museo de San Juan de Dios)
15세기 말 귀족 피사스(Pisas) 가문이 건조한 저택으로 후안 데 디오스(Juan de Dios)가 1550년 2월에 숨을 거두자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습니다. 산 후안 데 디오스(San Juan de Dios)는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을 위하여 병원을 설립하였고 이를 지원한 것이 피사 가문입니다. 중앙정원을 둘러쌓은 2층 건물에는 산 후안 데 디오스(San Juan de Dios)의 방 외 여러 점의 조각과 가구 회화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인구 : 55만명
접근 : 마드리드 아도챠역에서 4시간 15분 소요되며, 1일 6~7편이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산츠 역에서 13시간 소요, 1일 2편.
세비야 역에서 약 2시간 30분 소요, 1일 5~6편. 마드리드 역에서 버스로 6시간 소요, 1일 6~10편. 세비야에서 직통버스로 약 3시간
30분 소요, 1~2시간 간격운행.

말라가는 그 옛날 페니키아 사람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그 뒤 로마와 아랍 등 여러 번 지배자가 바뀐 오랜 역사가 있는 도시. 그렇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명소지인 “태양의 해안 중심도시”입니다. 국제선 비행기의 발착지로 국제도시로 되어있습니다. 시내 중심지의 공원에는 형형색색의 꽃과 열대식물이 무성하고 대로에는 관광용마차가 오락가락 하고 있습니다. 남국의 무드가 가득한 시가지에는 밝고 쾌청한 푸른 하늘이 잘 어울립니다.

대성당 (Catedral)
구시가지 입구에 솟아있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대성당입니다. 16세기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18세기 중엽 자금부족 때문에 우측 탑이 미완성된 체로 공사는 끝나버렸습니다. 내부에는 17개의 예배당이 배치되어 있고, 그중 로사리오 예배당에는 아론소 가노 작품유화 성모 로사리오 (Virgen del Rosario) 컨셉션 예배당에는 클라우디오 게료 작품 성모 마리아의 인마쿨라다 (Inmaculada) 등이 있습니다. 로스 가스도스 예배당의 슬픈 성모 마리아 (Dolorosa)는 베드로 데 메나의 걸작 중 하나입니다. 예배당에는 스페인 시민전쟁으로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내부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18세기 성직자 좌석 장식 위에도 베드로 데 메나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o Malaga)
16세기 르네상스 양식과 무랄 양식을 혼합한 페나 비스타 궁전을 개조하여 2003년 10월에 개장 피카소의 손자 베르나르오 레이스 피카소로부터 기정 받은 회화, 조각, 도자기 등 미공개작품을 포함하여 204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습니다.

피카소 탄생가옥 (Casa Natal de Picaso)
스페인에서 태어난 위대한 화가 피카소는 1881년 말라가에서 태어나 10세까지 유 소년기를 이 도시에서 보냈습니다. 메르세 광장의 15번지가 피카소의 상가였던 장소입니다. 내부에는 화가였던 피카소의 아버지 호세 루이스 프라고스의 유화와 피카소의 세례식 의상, 피카소의 소중한 사진 등 도기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메르세 광장은 피카소의 유소년 시절 놀았던 장소로 이 광장의 비들을 보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산티아고 교회 (Iglesia de Santiago)
16세기 초 건조된 건물입니다. 피카소가 세례를 받고 피카소의 양친이 결혼식을 올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8세기 대대적인 개축을 할 즘에, 최초 건립된 교회의 내부는 파괴되었지만 고딕, 무디할 양식을 혼합한 탑은 남아있고 세마나 센터에는 이 교회에서는 로사리오 성모상 아모레 성모상 등의 초상화가 출토되었습니다.

인형의 집 박물관 (Museo casa de Munecas)
보리아 이라스 여사가 장구한 세월에 걸쳐 수집한 18~20세기에 걸쳐 예술적인 모형 가옥과 완구, 인형 등을 전시한 박물관입니다.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저택을 이용하였습니다. 주변에는 골동품점도 많기 때문에 발굴된 물건을 살펴보면서 산책하는 것도 유익합니다.

알칼사바 (Alcazaba)
고대 로마시대의 요새 유적으로 11세기 로로코인에 의하여 축성되었습니다. 이중성곽 요새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 내 중앙부분에는 3개의 이슬람식 정원과 궁전의 일부가 남아있습니다. 궁전은 말발굽 형 아취와 기하학적 모양이 아름답고 분수도 갖추어 있고 그러한 점에서 미니 알람브라 궁전이라고 했습니다. 성벽 밖에는 로마궁전의 유적이 있습니다.

히브랄파로 산성 (Castillo de Gibralfaro)
알카사바(Alcazaba)의 외각에는 14세기의 성벽이 이어져 이곳에서 바라보면 말라가의 시가지와 항구, 지중해가 파노라마처럼 바라보입니다. 성의 중앙부에는 전쟁관련 박물관(Centro de Interpretacion)이 있고 성의 정상에는 파라솔이 있어 잠깐 쉴 수가 있습니다.

말라가 박물관 (Museo de Malaga)
13세기부터 현대까지의 회화, 조각, 도자기 등 약 2100개의 소장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이 있습니다. 모두 16세기에서 20세기 회화가 충실히 보관되어 있습니다. 호세 데 리베라, 소레바랑, 무리요의 작품도 있고 현재는 새로운 말라가 미술관의 건설계획을 하고 있고, 소장품의 일부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피카소의 16세 때의 작품 노 부부(Pareja de Ancianos)와 아버지를 묘사한 모포를 두른 노인(Viejo de la Manta)을 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을 것입니다.

민속박물관 (Museo de Artes y Costumres Populares)
17세기의 빅토리아 관저를 개조하여, 1층에는 와인제조에 사용된 도구와 농기구, 고기잡이 소형어선 또 2층에는 18~19세기의 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고, 말라가 시민들의 생활이 묘사되어 흥미롭습니다.

아타라사나스 시장 (Mercado Central de Atarazanas)
이슬람시대 조선소였던 부지에 새운 시장으로 14세기 때 중앙 문이 남아있습니다. 시장은 19세기에 건설된 것이지만 이 문은 살아있습니다. 철 소재를 구사하여 설계되어 이슬람 건축양식과 융합된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스텐드 클래스로 장식된 뒷문도 아름답습니다.

성모 마리아 예배당 (Santario de Nuestra Senora de Victoria)
이슬람을 통치하였던 말라가를 탈환할 즈음 그리스도군의 야영지였던 장소에 세운 교회로서 말라가시 시호성모, 승리의 성모 마리아상이 모셔져있습니다. 로스미니모스 기사단에 의하여 15세기 말 예배당과 수도원이 조성되어 그 후 1700년에는 호화로운 예배당이 새롭게 세워졌습니다. 승리의 성모 마리아상이 모셔져있는 바로크양식의 부속예배당 천정 돔 보베다 델 카마린(Boveda del Camarin)은 입에서 찬사가 나올 만큼 볼만합니다.

 
 

인구 : 약 10만명
접근 : 말라가에서 기차로 직통 45분. 보통 열차로 1시간 15분. 1일 10~20편. 여름에는 카디스, 론다, 알헤시라스, 세비야, 안달루시아에서 정기노선을 운행.

마르베야는 태양의 해안(Costa del Sol) 중에서도 최고급 명승지로 알려져 주변에는 골프장과 이름난 사람들의 별장도 많습니다. 도심에는 고급화장품이 진열되어 있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흐르는 곳입니다. 구시가지 가스고 안티고에는 16세기의 저택이 남아있고 스페인다운 좁은 도로가 눈에 뜨입니다. 버스터미널은 도시 북서 측 고속도로의 북측에 있습니다. 중심부까지는 7번 버스로 약 10분 소요됩니다. 남측은 해수욕장이 넓게 자리 잡고 고급 호텔과 맨션으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다른 방향 북측은 하얀 가옥이 연이어진 구시가지 오렌지 나무로 둘러싸인 오렌지 광장은 구시가지의 중심으로 광장 맞은편에 시청이 있습니다. 그 옆에 관광안내소가 있습니다. 광장 가까이는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된 빠상 병원을 개축한 그라바도 미술관(Museo de Grabado)가 있고 마드리드 자치대학 호세 루이스 모랄레스 교스가 기증한 2000점 이상의 작품 일부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피카소 작 동판에 애칭작품 “앉아있는 여인” 외 살바도르, 달리의 목채화(꽃과 달리Ⅱ), 미로의 리드그라프 등도 볼 수가 있습니다.

광장의 북쪽에는 이슬람 시대의 9세기 성벽유적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공원에는 300종류의 분제를 전시하고 있는 분제 박물관(Museo de Bonsai) 가 있습니다. 동양적인 취향을 응축한 박물관의 건물을 쌓고 있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명승지를 즐기고 싶다면 마르베야에서 6km에 있는 바누스 항구(Puerto Banus)로 가볼 것을 권합니다. 호화 관광선과 요트가 정박하고 있는 요트항구 주변에는 고급식당, 카페, 화장품점이 줄을 잇고 또한 종합 백화점도 있습니다.

 
 

인구 : 13.600명
접근 : 말라카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1시간 간격 운행. 그라나다에서 약 2시간, 1일 2~3편.

해안 산간에 협소한 바위 위에 세운 하얀 마을입니다. 해안의 중앙부분에는 유럽의 발코니로 칭해지는 전망대가 있고, 지중해를 볼 수 있습니다. 2003년에 알폰소 11세의 조각상이 전망대에 세워졌습니다. 1885년 그가 네르하를 방문하였을 때 지중해의 전망에 감명을 받아 “유렵의 현관” 이라 명명하였고, 그 이후 수려한 경관이 알려지면서 휴양지로 개발이 진행되었습니다.

전망대가 솟아있는 아래는 유리로 지어진 레스토랑으로 되어 있고 그 양측에 움푹 파인 암석을 이용한 해수욕장, 그곳이 이어져 있습니다. 네르하는 “태양의 해안”에서도 가장 따뜻하기 때문에 바캉스 때는 관광객에게 인기가 있지만 해수욕장 여기저기에 작은 어선이 정박하고 있어 고기잡이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 어촌의 풍정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매력의 하나입니다. 이 발코니 해안이 이어져 있는 산포도로는 적도분위기로 카페가 줄지어선 관광마차도 순번대기를 하고 있고, 전망대를 배경으로 좌측에는 바르크-무디할 양식의 살바도르 교회(Iglesia de El Salvador)가 서 있고 우측 편에는 관광안내소가 있습니다.

네르하에서 3km 거리에 있는 마로(Maro)시는 네르하 동굴(Cuevas de Nerja) 가 있고 1959년에 발견된 종류동굴로 입구에는 2 만 년 전에 선사 시대의 벽화와 크로마뇽인의 주거 유적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네르하 동굴 가까이에 있는 아키라 수도교(관계 : 용수용 다리)는 마로에 있는 설탕 공장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19세기 만든 것입니다. “하얀 마을”이라고 알려진 “우리비리아나”도 네르하에서 5km거리입니다. 필히 방문 추천하는 곳입니다.

 
 

깊은 협곡에 의하여 분리된 “하얀 도시”
인구 : 3만5천명
접근 : 그라나다에서 알 헤스라스까지 기차로 약 3시간. 알 헤스라스에서 약 2시간.
코르도바, 세비야, 말라가에서 보다디야에서 환승. 세비야에서 버스로 3시간, 1일 3~5편. 말라가에서 버스로 2시간, 1일 4~10편

론다의 시가지는 대개 스페인 도시와 마찬가지로 신시가와 구시가지로 나누어져있습니다. 약간 다른 점은 과달빈 강이 깊은 협곡에 의하여 격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두 도시를 이어주는 누에보 다리의 아래는 거의 100m 절벽으로 되어있고 “다호계곡”을 넘어가는 데에는 봄이 될 때까지 설원이 계속 되어 기다려야 합니다.

 
 

기원전 옛날부터 좋은 항구 조건으로 번영을 누렸던 카디스는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전에 의하여 스페인 식민지 경영의 본부라는 새로운 명칭을 얻었습니다. 신대륙에서 유입된 부는 이 도시를 통과하여 유럽으로 운반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또한 1805년에는 넬슨이 인솔하는 영국함대와의 결전을 하기 위하여 트라팔가 해전으로 출격하였고, 현재의 카디스는 어업 중심지 겸 항만도시로서 카나리아 제도로의 선편도 여기서 취항하고 있습니다.

 
 
 

칸타브리아 해 연안의 이 지역은 우리나라의 함경도와 거의 동일한 위도에 위치해 있지만 멕시코 만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서늘한 이상적인 기후조건입니다. 건조기는 없고 여름에도 비가 내려 건조한 마드리드에서 여기를 방문하면 그 차이에 놀라게 됩니다. 여름 바캉스 시즌에는 스페인은 무엇보다 유럽에서 피서 관광객으로 분비고 하지만 수온이 매우 낮기 때문에 해수욕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해변 일광욕도 수영복차림으로 한기를 느낍니다. 여름이지만 빠르게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긴 소매 재킷이나 가벼운 스웨터를 휴대하시고 한 편으로 겨울에도 춥지 않아 특별히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비가 많아 두터운 코트보다 후더가 달려있는 재킷 형태의 의상이 편리합니다.

 
 

인구 : 35만 8000명
접근 :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에서 특급열차로 약 5시간 30분. 1일1편. 바르셀로나 산시 역에서 특급열차로 약 9시간. 1일1편.

빌바오와 그곳 일대는 비스케이 해만에 개항한 항구로 양질의 철광석 광산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도 굴지의 공업지대로써 발달해 왔습니다. 풍요한 바스크지방 중에서도 가장 활기차고 강한 경제력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페인어와는 전혀 다른 언어를 갖고 있는 바스크 사람이 사는 바스크지방의 문화중심지입니다. 그러나 바스크의 수도라고도 할 만한 도시인데도, 갑작스러운 공업발전으로 거대한 인구유입을 초래, 그 결과 바스크지방에서 가장 바스크사람이 많지 않아 바스크어 사용을 하지 않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찍이 자치정부가 설치되었고 현재까지 바스크 수도로써 변치 않고 건재하고 있습니다.

구겐하임 미술관 (Museo Guggenheim)
뉴욕 베니스 베를린과 더불어 이곳 빌바오에도 1997년에 개장한 유명한 미술관 프랑크 케리의 전위작가의 설계에 의하여 금속제 직사각형을 엇갈리게 쌓아 올린 기묘한 외관을 하고 있습니다. 빌바오 강의 푸른색과 석양의 붉은 장밋빛에 묘하게 반사되어 건물자체가 미술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층은 상설전시실로 회화사진 시각적인 현대 대중예술이 중심입니다. 3층은 특별 전시실, 카페 기념품점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바스크 박물관
바스크 생활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수렵생활시대의 혈거주지지로부터 최근의 가옥과 어선까지를 소노라마와 가구 의복 등으로 설명을 보충해주고 있습니다. 볼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견학시간을 충분히 갖기 바랍니다. 4층에는 바닥이 둥글게 비스케이 지방의 입체 도형으로 자리 잡고 바스크의 복잡한 지형과 촌락분포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빌바오 예술미술관 (Museo de Bellas Artes de Bilbao)
구관은 스페인의 고전미술과 바스크 지방의 예술, 신관에는 현대미술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로마네스크 벽화 외 엘 그레코, 슐바랑, 리베라, 모랄레스, 특히 리베라의 산 세바스챤의 순교후(San Sebastian despues de Maritirio)는 필히 보아야 할 명작입니다.

 
 
 

지방에는 매력적인 도시가 많고 이러한 전부를 돌아본다고 생각하신다면 최소한 1개월은 필요할 것입니다. 한정된 시간으로 여행하는 데에는 어떤 것을 볼 것인가 포인트를 그려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와인을 마셔보고 명물요리를 맛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가우디, 피카소, 고야와 같은 예술가를 추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건축문학, 음악, 축제 등을 탐구하는 테마는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모델을 테마로 하여 최소한 이러한 것은 필요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의 여행 소요일 수로 할 것인가, 될 수 있으면 조금 여유가 있도록 하고 자신에게 알맞게 조정하여 자유로운 여행을 계획해 보시도록 하십시오.

 
 

“스페인 국철 Renfe"
스페인 국철은 RENFE(Red Nacional de las Ferrocarriles Espanoles)로 통칭하여 부릅니다. 국철 역은 렌페 역(Estacion de RENFE)이라고 하고, 위치를 물을 때는 렌페 역이 어디 있습니까?(Donde esta la RENFE?)라고 물으면 됩니다. 철도여행에 취해보는 맛은 무엇보다 차창으로 펼쳐지는 풍경, 황량한 대지에 넓게 펼쳐있는 오리브 나무 숲 초원을 오가며 양을 사육하는 양의 무리들 변화가 다채로운 경관을 바라보고 있으면 긴 여정도 따분하지 않습니다. 열차에 타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을 사교성이 풍부하여 금방 친구가 된 듯이 마음을 엽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 기울어 듣는 것만으로도 여행기분을 충분히 느끼게 됩니다.

열차의 종류
스페인 국철은 열차의 종류를 아래 4가지로 구분합니다.

아베 (AVE)
전용 표준 궤도를 시속 약 300km 로 달리는 고속 열차입니다. 1992년 세비야선(마드리드-세비야)이 개통하였고, 2003년 바르셀로나선 (마드리드-예이다)이 개통되었으며, 바르셀로나까지의 연장 개통 시기는 미정인 상태이며, 말라가선(마드리드-말라가)이 개통하는 중이며, 말라가-코르도바 간을 AVE와 같은 표준궤도입니다. 코르도바-말라가 간을 재래선로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전 좌석은 지정석입니다.

그란데스 리네아스 (Grandes Lineas)
400km 이상 장거리 운행 특급열차, 바르셀로나-알리칸테를 연결하는 에우로메드(Euromed), 마드리드-발렌시아를 연결하는 알라리스(Alaris) 외 알타리아(Altaria), 탈고(Talgo), 인텔 시티(Inter City), 디우르노(Diurno), 아르코(Arco), 야간침대열차(Tren Hotel 과 Estrella)가 있습니다. 전 좌석은 지정석입니다.

레히오날레스 (Regionales)
도시와 지방을 연결하는 열차, 급행열차(TRD)와 지역급행(Regional Express) 등이 있습니다. (카탈루냐 엑스프레스, 안달루시아 엑스프레스와 같이 지방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각 역마다 정차하는 레히오날 Regional)이 있고, TRD는 전 좌석 지정석이며 레히오날 엑스프레스(Regional Express)는 예약도 가능합니다.

세르카니아스 (Cercanias)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말라가 등 대도시와 인근 지역을 연결하는 근교열차 전 좌석은 자유 석입니다.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지방에 위치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Compostela)는 그리스도인 3대 성 중 하나로 중세 이래 많은 순례자를 모여들게 하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야곱(스페인어로 산티아고)은 스페인에서 7년간 포교활동한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 후 순교하였고 제자들이 유해를 배로 스페인으로 운반 매장했지만 이슬람교도가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여 그리스도교가 박해당한 기간 동안에 그 묘의 소재가 망실 되어 버렸습니다. 9세기 초 별의 인도를 받은 양치기가 사도 야곱의 묘를 발견, 그 장소에 작은 교회가 건립되었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툼(Santiago de Compostum) 이라는 도시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라틴어로 캄푸스 셀라에(Campus Sellae)에서 유래되었으며, 묘(Compositum)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 실제 최근의 발굴 조사에 의하면 전재의 성당은 로마 시대의 묘위에 건립되어 있다고 확인되었습니다. 전설의 진위는 어찌 되었든 사도 야곱의 묘가 산티아고에서 발견 되었다는 이야기가 유럽을 중심으로 전파되어 많은 순례자가 이 지방을 주목하게 되었고 11세기에 들어 순례지로를 정비하고 교회, 수도원, 구호원, 숙박, 업소 등이 순례자를 맞이하였습니다. 스페인을 필두로 프랑스, 이태리, 독일, 멀리는 영국과 북구 등으로부터 최고 성수기에는 연간 50만 명의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메운다고 합니다. 그들 모두는 창 넓은 모자와 망토를 갖추고 손에는 물통과 단장을 들고 순례의 증거로 조개 폐를 걸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순례로 연도에는 교회 등에서 순례의 자세를 한 사도 야곱의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에 이르는 순례 루터는 여러 곳이 있지만 프랑스에서 오는 도로는 오직 피레네 산맥에서 두 갈래로 나뉩니다. 서쪽으로 이바네따(Ibaneta) 고개를 넘는 길과 중앙의 솜포르트(Somport) 고개를 넘는 도로가 있습니다.

 
 

인구 : 약 8만 8000명
접근 :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에서 특급열차로 약 8시간, 1일 1편. 마드리드 남부 터미널에서 버스로 6시간 45분~9시간, 1일 4~7편.

기도의 도시, 학문의 도시 그리고 비가 많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9세기 초에 사도 야곱과 더불어 산티아고의 묘가 이 지방에서 발견된 이후 유럽 사람들이 중요한 성지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 이라고 칭호 된 도로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옹 아스토르가를 경유하여, 이 도시까지 800km에 달하는 여정입니다. 왕족과 귀족, 수도사, 상인, 농민,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현대적인 편리한 교통수단이 없었던 시대에 이 성지를 목표로 발로 걸어서 이어왔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산티아고에는 많은 순례자가 방문하고, 대부분 열차와 자동차로 오고 있지만 그 중에는 옛날 방식대로 걸어서 대로는 자전거로 이 도시를 향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세대의 변천이 있다 할지라도 수많은 순례자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곳입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비는 조용히 끊임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대성당 (Catedral)
초기의 성당은 9세기 말에 건축된 아스투리아스 양식의 건물 이였지만 곧 파괴당하였고 그 후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로 된 후 “순례자의 길”이 되면서 프랑스에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전파되어 1071~1152년에 수도승 디에고 페라에스에 의하여 스페인 최고의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의 교회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후 증개축이 반복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파차다 델 오브라도리오(Fachada del Obradorio)를 통하여 성당의 중심에 들어서면 바로 그곳에 있는 3개의 아치가 영광의 문(Portico de la Gloria)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볼 수 있고 요한 묵시록을 본받은 200개 이상의 인체상은 명장 마태에 의하여 12세기 초에 완성된 것입니다.

중앙에 서 있는 기둥의 상부에는 오른손에 책, 왼손엔 지팡이를 잡은 사도 야곱이 먼 여행길의 순례자를 영접하고 그 기둥의 하단은 다섯 손가락 문양이 붙어있습니다. 그 외에 백색으로 된 부분은 순례자들이 기둥을 만지면서 기도를 올리기 때문에 조금씩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둥의 손가락 흔적은 순례자들의 신의 은총이 배어있는 듯합니다. 정면 제단을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쥬리게라 양식으로 중아에 있는 사도 야곱의 상이 기도를 올리고 있고 그 주위로는 수많은 조각으로 장식되어 광채가 빛나고 있습니다. 제단의 좌측 편으로 나아가면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고, 그곳을 내려서면 기도대가 놓여있고 사도 야곱의 관을 배알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제단의 우측 편으로 계단을 오르면 사도 야곱 상 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습관적으로 망토 옷깃에 입맞춤을 하고 사도 야곱상 안치한 우측은 박물관이 있고 여기에는 의식 때에는 6명의 남자가 빙빙 돌면서 대형향로를 옮기는 의식이 볼거리가 있습니다. 루멘스와 고야의 밑그림 타페스터리도 미술 이호가의 꼭 보아야 할 작품에 속합니다.

제단 우측입구 문은 “은세공 문”(Puerta de las Platerias) 라고 부르고 그리스도 수난의 그림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문 앞 4마리 말상의 분수가 있는 광장은 “은세공 광장”(Plaza das Platerias)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옛날 은세공 사들이 바로 여기에서 점포를 열었던 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킨타나 광장 (Plaza de la Quintana)
대성당 뒤편에 있는 “면죄의 문”을 바라보는 광장 일명 “성인을 낸 문”으로도 부르는 이 문은 1611년에 만들어 명장 마태 작품의 예언자 상으로 장식되어 있고 보통 때는 폐쇄되어 있고 문을 여는 것은 7월 25일 사도 야곱제가 일요일과 겹치게 되는 성년일 때만 엽니다. 개문과 함께 축제가 시작하면 그 해에는 여러 가지 축하 행사가 거행됩니다.

페라두라 대로 (Paseo de la Ferradura)
구시가지 서쪽 넓은 구릉공원입니다. 경사길 도로 중에서 대성당의 자태와 첨탑을 볼 수 있습니다. 언덕에 오르면 녹음이 욱어진 가리샤의 풍경이 넓게 펼쳐져있고 구릉 위에는 19세기 여류시인 로사리아 데 카스트로의 상이 있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비가 많음을 상징하듯이 공원의 나무 모두가 이끼로 덥혀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